
거실에 디퓨저를 놓고, 욕실에서 인센스를 피우고, 저녁엔 아로마 향초를 켜놓는다. 집 안 가득 퍼지는 좋은 향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공간을 더 럭셔리하게 만들어준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향기로운 공기가 실내 담배 연기만큼이나 폐에 해로울 수 있다면 어떨까. 기분 좋다고 켜둔 그것이 1군 발암물질을 뿜어내고 있다면?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의료계와 연구 기관이 반복해서 경고해온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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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이 일반 가정 욕실과 유사한 10.23㎡ 공간에서 향초를 2시간 태운 뒤 공기를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 향초 10개 중 3개 제품에서 다중이용시설 실내공기질 권고기준인 500μg/㎥를 초과하는 총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 최대치는 무려 2,803μg/㎥로 기준치의 약 여섯 배에 달했다.
더 충격적인 건 인센스다. 인센스 스틱 10개 중 5개 제품에서 1군 발암물질인 벤젠이 신축공동주택 실내공기질 권고기준인 30μg/㎥를 초과하는 수치로 검출됐다. 최소 33μg/㎥에서 최대 186μg/㎥까지 나왔다.
1군 발암물질이란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충분히 확인된 물질을 뜻한다. 담배 연기에 들어있는 바로 그 물질과 같은 등급이다. 좋은 향을 위해 인센스를 15분 피우는 동안, 우리는 발암물질이 가득한 공기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2013년 프랑스 환경보건주택부는 인센스와 향초를 대대적으로 금지하려 한 적이 있다. 인센스는 1군 발암물질 벤젠과 포름알데히드를, 향초는 독성과 자극성이 있는 아크롤레인을 방출하며 특히 인센스는 향초보다 훨씬 많은 위험 물질을 배출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향기 산업 강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도는 더 충격적이다. 결국 전면 금지는 무산됐지만, 이후 프랑스는 실내 공기질 실행 계획을 세우고 인센스와 향초에 대한 적극적인 검사와 올바른 사용 방법 홍보로 관리 방침을 전환했다.
향초나 인센스처럼 불을 쓰지 않으니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퓨저나 방향제는 연기도 없고 훨씬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태우지 않아도 문제는 있다.
디퓨저와 방향제에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에서 일부 성분은 코와 기관지를 자극해 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프탈레이트와 같은 물질은 연구에 따라 천식이나 기관지염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간 노출 시 호르몬이나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성분이 리모넨이다. 감귤류 향을 내는 리모넨은 천연 성분이라 안전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리모넨이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고, 공기 중 오존과 결합하면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 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레몬향 디퓨저를 켜놓은 공간에서 포름알데히드가 만들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향 뒤에 숨은 화학 반응이다.
2025년 11월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실내 인테리어 제품에서 발생하는 VOC 혼합물에 전신 노출된 동물 실험 모델에서 폐 내 T세포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골수에서의 림프구 편향 조혈이 강화된 결과였다. 코호트 연구에서도 VOC에 노출된 개인들에게서 폐쇄성 폐질환 위험 증가와 연관된 면역 지표 상승이 확인됐다.
단순한 호흡기 자극을 넘어, 면역 세포 생성 자체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장기간 향기 제품에 노출된 실내 환경이 면역 체계에 구조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경고다.
배우 신성일 씨는 생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집 안에서 향과 초를 자주 피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실내 공기 오염과 장기 노출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물론 단일 원인으로 결론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십 년간 밀폐된 실내에서 매일 연소 제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환기를 시킨 후 실내 공기를 재측정했을 때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향초나 인센스를 사용할 때는 창문을 약간 열어두거나 사용 후 충분한 환기가 필요하다.
가장 효과적이고 비용이 들지 않는 해결책이 환기라는 뜻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냄새를 향으로 덮기보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며, 숯과 같은 흡착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하루 세 번, 5분 이내라도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꾸는 것이 권장된다. 외부 공기보다 실내 공기가 더 오염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특히 향기 제품을 자주 쓰는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좋은 향이 나는 집이 건강한 집은 아닐 수 있다. 향기보다 환기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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